카탈로그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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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제작 기획이 반이다 . 그 나머지 반도 기획이다본문
안녕하세요, 희명디자인입니다. 주로 B2B 제조업 고객사의 카탈로그와 브로셔를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기획 단계에서 틀어진 프로젝트'만 수십 건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문의 전화를 받을 때 제일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카탈로그 하나 만들어야 해서요." 이 짧은 한 마디가 들어올 때마다 저는 속으로 먼저 가늠합니다. 이 회사, 지금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박람회 일정이 잡혔거나, 영업팀이 새로 꾸려졌거나, 아니면 경쟁사가 번듯한 자료를 들고 나타나서 내부에서 한바탕 불이 붙었거나. 이유는 기업마다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카탈로그 제작 요청이 나오는 시점은 거의 예외 없이 회사 내부에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인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탈로그는 흔히 '디자인 작업'으로 불리지만, 저는 이걸 '정보 정리 작업'으로 봅니다. 디자인은 사실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첫 미팅에서 제가 먼저 꺼내는 질문
경험이 쌓일수록 초기 미팅에서 디자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게 됩니다. 대신 제가 반드시 물어보는 게 있습니다. "제품이 몇 개예요? 그리고 그 제품들 사이에 어떤 분류 체계가 있나요?"
이 질문이 단순히 페이지 수 계산을 위한 건 아닙니다. 정보의 밀도와 흐름을 파악하는 겁니다. 제품이 5개인 카탈로그와 120개인 카탈로그는 편집 구조 자체가 달라야 하고, 제품을 어떤 기준으로 묶느냐에 따라 목차 설계도 완전히 바뀝니다.
그런데 국내 B2B 제조업체 중에는 제품 라인업이 수십 년 쌓이면서 내부 분류 체계가 정리되지 않은 곳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담당자마다 제품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고, 사내 코드와 시장에서 쓰는 명칭이 혼용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디자인부터 들어가면, 작업 도중에 텍스트가 계속 뒤집힙니다. 일정이 두 배로 늘어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누가 볼 자료인가"가 구조를 결정한다
초기 미팅에서 또 하나 빠뜨리면 안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카탈로그, 실제로 누가 어떤 상황에서 봅니까?" 이게 의외로 답변이 흐릿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는 사람이 영업사원인지, 구매 담당자인지, 기술 검토자인지에 따라 강조해야 할 정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업 미팅에서 설명 도구로 쓰는 자료라면 빠른 탐색이 가능한 편집 구조와 시각적 구분이 핵심입니다. 반대로 구매 담당자가 검토용으로 훑어보는 자료라면 스펙 정보의 정합성과 비교 가능성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 판단 없이 만들어진 카탈로그는 결국 애매한 자료가 됩니다. 영업용으로 쓰기엔 페이지가 너무 복잡하고, 기술 검토용으로 쓰기엔 스펙 표기가 들쑥날쑥합니다. (실제로 이런 상태로 납품된 카탈로그가 창고에 박스째 쌓여 있는 경우를 꽤 봤습니다.)
가장 자주 터지는 문제 세 가지
수십 건의 카탈로그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문제가 터지는 지점은 대략 세 곳으로 좁혀졌습니다.
첫째는 정보 과잉입니다. 제품 경쟁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모든 정보를 동일한 비중으로 나열하면 독자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잃어버립니다. 빽빽한 페이지는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라 정보 위계가 없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둘째는 분류 기준의 충돌입니다. 기업 내부에서 사용하는 제품 분류 체계와 고객이 찾는 기준이 다른 경우가 꽤 많습니다. 내부에서는 생산 라인 기준으로 제품을 묶지만, 고객은 용도나 재질 기준으로 제품을 검색합니다. 이 간극을 정리하지 않으면 완성된 목차가 독자 입장에선 낯설게 읽힙니다.
셋째는 흐름 없는 나열입니다. 카탈로그를 단순 제품 목록으로 이해하면 페이지가 아무 맥락 없이 나열됩니다. 브랜드 소개, 핵심 제품, 상세 스펙으로 흐름이 설계된 카탈로그와 그렇지 않은 카탈로그는 같은 정보량이라도 독자가 받아들이는 피로도가 다릅니다. (이거, 실제로 비교해보면 체감이 확실히 납니다.)
쓰임새에 따라 편집 구조가 달라진다
영업 현장에서 직접 펼쳐 보여주는 카탈로그는 색인과 빠른 탐색 구조가 실용성을 좌우합니다. 담당자가 고객 앞에서 버벅이지 않으려면 원하는 제품 페이지를 3초 안에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구매 담당자가 검토용으로 보는 카탈로그는 다릅니다. 스펙 표기의 단일 기준 데이터와 단위 통일이 핵심입니다. 같은 제품인데 A 페이지엔 mm로, B 페이지엔 cm로 표기되어 있으면 신뢰도가 바닥을 칩니다. (이 작은 불일치 하나가 구매 검토 단계에서 탈락 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시회 배포용은 또 다릅니다. 방문객이 부스 앞을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 이 자료의 역할은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메시지 하나를 기억에 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이 하나의 카탈로그에 뒤섞이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제작 전에 정리되어야 할 것들
기획이 잘 된 카탈로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정보가 강조되어야 하는지, 어떤 정보가 보조 역할인지 위계가 명확합니다. 그리고 기업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와 독자가 궁금해하는 정보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제품 목록 확정, 정보 우선순위 정리, 독자 정의, 텍스트 초안, 이미지 현황 파악이 어느 정도 되어 있어야 작업이 흔들리지 않고 갑니다. 이 중 하나라도 흐릿한 상태에서 시작되면, 대부분 편집 구조를 갈아엎는 시점이 반드시 옵니다. 그 시점이 인쇄 직전일 때 진짜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수정 결정 구조, 즉 누가 최종 OK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검수 프로세스 자체가 흔들립니다. 담당자와 합의한 내용을 임원이 뒤집고, 그걸 다시 본부장이 조율하는 사이에 납기가 지나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이 부분은 저희 쪽에서도 프로젝트 시작 전에 꼭 짚고 넘어가는 지점입니다.)
카탈로그는 제작물이 아니라 마케팅 자산이다
카탈로그 제작을 '출력물 하나 만드는 일'로 이해하면 완성되는 순간 그 자료의 역할은 끝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카탈로그는 회사의 제품 데이터를 단일 기준으로 정리하고, 영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케팅 자산이 됩니다.
정보가 잘 정리된 카탈로그는 다음 버전 업데이트도 쉽고, 브로셔나 리플릿 같은 파생 자료를 만들 때도 데이터 기반이 탄탄합니다. 반대로 기획이 흐릿한 상태에서 서둘러 찍어낸 카탈로그는 1~2년 안에 다시 만들게 됩니다. 처음부터 두 번 만들 셈인 거죠.
편집디자이너가 초기 미팅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디자인과 무관한 것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을 때, 카탈로그는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하는 자료가 됩니다.
카탈로그 제작을 앞두고 계신 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저희 희명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 고객사의 제품 데이터를 제대로 구조화하는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그게 결국 더 오래 쓰이는 자료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거든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 희명디자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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