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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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슈어제작, 어떤 디자인을 '시간화'하는가?본문
안녕하세요. 희명디자인 디자이너입니다.
얼마 전 한 고객사 대표님이 브로슈어 시안을 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회사가 이렇게 오래된 것 같아 보이네요."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창립 20년차 제조 기업인데, 연혁이 4페이지를 차지하고 비전은 맨 뒷장에 반 페이지 — 대표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지금 뭘 하는 회사인지"가 안 보인다는 거였죠.
그때 깨달은 게 있습니다. 브로슈어는 회사 정보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 회사를 어느 시간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업이라는 겁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연혁이 길면 신뢰가 쌓일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연혁 페이지가 많다고 신뢰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어떤 시기를 얼마나 촘촘하게 다루느냐가 인상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 2003년부터 2024년까지 해마다 빼곡히 적어놓으면 "이 회사 역사가 깊구나"라는 느낌이 먼저 옵니다. 반면 최근 5년 성과만 굵직하게 뽑아놓으면 "지금 잘 나가는 회사구나"로 읽히죠. 주요 전환점 3~4개만 타임라인으로 시각화하면 또 느낌이 다릅니다 — "선택과 집중을 아는 회사"처럼 보이거든요.
문제는 이걸 의식하지 않고 편집에 들어가는 경우입니다. 고객사에서 "있는 거 다 넣어주세요"라고 하시면, 담당자 입장에서는 일단 다 넣게 되잖아요. 그러면 연혁이 3페이지를 넘기면서 브로슈어 전체가 과거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집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투자 유치나 신규 거래처 확보 목적의 브로슈어에서 과거 비중이 높으면 "성장이 멈춘 회사"라는 오해를 살 수 있거든요.)
대표 인사말, 시제 하나로 무게중심이 움직인다
대표 인사말을 그냥 격식체 인삿말로만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브로슈어의 시간적 톤을 잡아주는 앵커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겠습니다" — 이렇게 끝나면 미래형입니다. "30년간 한 우물을 파온 장인 정신으로" — 과거형이죠. "현재 국내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 현재형이고요. 단순한 문장 차이 같지만, 독자가 인사말을 읽고 나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흥미로운 건 결론부 시제의 힘입니다. 인사말이 과거 이야기로 시작하더라도 마지막 문장이 미래를 향해 있으면, 전체 메시지가 미래 쪽으로 기울어요. 읽는 사람은 마지막에 읽은 문장의 시제를 가장 강하게 기억하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인사말 시안을 잡을 때 마지막 두 줄의 시제를 먼저 정합니다. 거기서부터 역으로 올라가면서 앞 문단을 맞추는 게 훨씬 수월해요.)
조직도는 '현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
조직도를 단순히 부서 구조 정리로 생각하면 놓치는 게 있습니다. 계층형으로 그리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회사"라는 인상이 생기고, 수평형이나 네트워크형으로 그리면 "유연하고 빠른 회사"라는 인상이 생깁니다. 조직도 대신 핵심 인물 프로필을 배치하는 곳도 있는데, 이건 "구조보다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메시지를 깔고 가는 선택이죠.
스타트업이 계층형 조직도를 넣으면 "우리 아직 10명인데 왜 이렇게 딱딱하지?"가 되고, 50년 된 제조 기업이 네트워크형을 쓰면 "실체와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회사의 실제 조직 문화와 브로슈어 위 조직도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독자는 그걸 은근히 감지합니다. (면접 가서 회사 분위기랑 브로슈어 분위기가 다르면 신뢰가 깎이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비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역할이 바뀐다
"2030년까지 매출 5,000억 달성"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혁신" — 둘 다 비전이지만 독자가 느끼는 거리감이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가까운 미래의 약속이고, 후자는 시점이 특정되지 않는 방향성이에요.
더 중요한 건 위치입니다. 비전을 브로슈어 도입부에 놓으면, 이후 페이지의 역량 소개며 실적 데이터가 전부 "이 비전을 향한 근거"로 읽힙니다. 후반부에 놓으면 정반대예요 — 앞서 보여준 역량과 실적의 귀결점, 그러니까 "이만큼 했으니 이제 여기를 향합니다"라는 흐름이 되죠.
같은 비전 문구인데 앞에 놓느냐 뒤에 놓느냐로 브로슈어의 서사 구조 자체가 달라집니다. 이걸 편집 전에 안 잡으면 시안이 나온 뒤에 "뭔가 흐름이 이상한데?"라는 막연한 피드백을 받게 됩니다. 그때 가서 페이지 순서를 뒤집으면 디자인 작업이 거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에요. (납기 문제로 이어지는 케이스를 꽤 봤습니다.)
실적 수치, 놓는 방식이 곧 논증이다
누적 매출 1조, 거래처 300곳, 특허 45건 — 이런 숫자를 전면에 깔면 "긴 시간의 총량"이 신뢰 근거로 작동합니다. "올해 전년 대비 매출 40% 증가"를 강조하면 역동성이 앞으로 나오고요. 수상 이력이나 ISO 인증을 붙이면 외부 검증이라는 레이어가 하나 더 얹어지죠.
여기서 편집자가 신경 쓸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실적 다음에 비전이 바로 이어지면, 독자 머릿속에서 과거 데이터가 미래 주장의 근거로 자동 전환됩니다. "이만큼 해왔으니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구조가 되는 거죠. 반대로 비전 다음에 실적이 오면 "이걸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만큼 하고 있다"는 증명 구조가 됩니다. 배열만 뒤집었는데 논증의 방향이 뒤집어지는 셈이에요.
회사 상황마다 시간 배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창업 3년차 기업이 연혁을 장황하게 쓰면 오히려 얄팍해 보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팀 역량과 비전을 먼저 꺼내고, 초기 성과와 로드맵으로 이어가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과거가 짧은 건 약점이 아니라 사실인데, 그걸 억지로 부풀리면 독자가 먼저 알아챕니다. (투자 IR용 브로슈어에서 이런 실수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투자자들은 연혁의 양이 아니라 성장 각도를 봐요.)
안정기에 접어든 기업은 반대 고민을 합니다. 역사와 실적은 충분한데 "늙어 보이면 어쩌나"라는 걱정이요. 이때는 과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를 중심에 두고, 연혁은 신뢰 배경으로만 깔아두는 편집이 효과적입니다. 신뢰의 뿌리는 과거에 두되, 독자의 시선은 현재에 머물게 하는 거죠.
전환기 기업은 가장 까다롭습니다. 기존 역사를 지울 수도 없고, 새 방향만 이야기하자니 "그럼 전에 한 건 뭐였냐"는 의문이 생기니까요. 이런 경우 과거 → 전환의 계기 → 새로운 비전이라는 서사 구조가 필요합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진화의 근거로 재배치하는 겁니다. 이 균형점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변하고 있는 회사"와 "흔들리는 회사"의 인상이 갈립니다.
자주 받는 질문 몇 가지
Q. 과거 중심으로 편집하면 어떤 인상이 강해지나요?
"검증된 기업"이라는 프레임이 강화됩니다. 역사가 긴 제조업이나 건설업 쪽에서 효과적인 접근이에요. 다만 현재 역동성이 묻힐 수 있으니, 최근 실적이나 신규 사업 내용을 중간중간 배치해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Q. 미래 중심 편집은 어떤 경우에 적합한가요?
투자 유치, 신사업 런칭, 스타트업 소개 등 "앞으로 할 일"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리합니다. 다만 미래 비중이 과도하면 "그래서 지금은 뭐 하는 회사인데?"라는 의문을 남길 수 있어요. 현재 역량이나 초기 성과를 함께 배치해서 실체감을 보완하는 게 핵심입니다.
Q. 현재 중심 편집은요?
"지금 이 순간 움직이고 있는 회사"라는 인상을 줍니다. 사업 포트폴리오, 진행 중인 프로젝트, 현재 조직 역량을 전면에 내세우는 구조인데요. 안정기 기업이 "오래됐지만 정체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 잘 맞습니다.
브로슈어는 정보 정리가 아니라 시간 설계다
연혁을 몇 페이지 할지, 인사말 마지막 문장을 어떤 시제로 맺을지, 비전을 앞에 놓을지 뒤에 놓을지, 실적을 어떤 순서로 배열할지. 이런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서 독자 머릿속에 "이 회사는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 기업인가"라는 프레임을 만듭니다.
그래서 브로슈어 제작을 "회사 소개 자료 만들기"로 접근하면 일회성 인쇄물이 나옵니다. "우리 회사의 시간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로 접근하면, 영업팀이 거래처 미팅 때마다 꺼내는 마케팅 자산이 됩니다. 같은 예산, 같은 페이지 수인데 결과가 완전히 다른 이유는 디자인 스킬이 아니라 편집 설계의 차이입니다.
브로슈어 편집 구조나 시간 배치에 대해 궁금한 점 있으시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희명디자인 디자이너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할만한 희명디자인 인사이트 칼럼 링크 바로가기 *
1. 회사 브로슈어 제작·디자인, ‘회사 소개서’가 아닌 기준서로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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