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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물 디자인은 어디서 끝나야 하는가본문
모니터에서는 맞았는데 인쇄기 올라가자마자 터지는 작업들이 있다. 디자이너는 시안을 끝냈다고 생각하는데, 인쇄소는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본다. 사고는 여기서 난다. 디자인이 끝났다는 시점과 인쇄가 시작된다는 시점 사이에 검수 공백이 있고, 그 공백을 메우지 않으면 재인쇄·전량 폐기 같은 구조적 문제가 반복된다.
이 공백을 메우는 건 디자이너가 인쇄 공정을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에 달려 있다. 정답은 없지만, 시안 단계에서 검수되어야 하는 사양은 정해져 있다.
디자인-인쇄 경계에서 자주 터지는 사고
가장 자주 발견되는 사고가 RGB로 작업한 디자인을 CMYK로 변환하면서 색이 어두워지는 사례다. RGB는 빛의 삼원색이고 CMYK는 잉크의 사원색이라 색역 자체가 다르다. RGB 색역이 CMYK보다 넓어서 밝은 청록, 네온 그린, 강렬한 빨강은 CMYK로 재현되지 않는다. (모니터에서 예쁜 네온톤은 인쇄 올라가면 거의 죽습니다.) 변환 과정에서 어두워지는 건 물리적으로 회피할 수 없다.
폰트 사고도 자주 본다. 폰트 라이선스가 임베딩을 제한하거나 PDF 내보내기 설정에서 임베딩 옵션이 빠지면 인쇄소 시스템에서 다른 폰트로 자동 치환된다. 디자이너가 잡은 폰트와 다른 폰트로 인쇄되는 사고고, 시안 컨펌 단계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인쇄 후에야 확인된다. (폰트 하나 바뀌면 줄바꿈 전체 틀어집니다.) 폰트 아웃라인 처리하거나 PDF/X-1a 형식으로 임베딩하는 게 답이다.
이미지 해상도 부족도 흔하다. 웹 이미지 표준은 72dpi인데 인쇄용 표준은 300dpi 이상이다. 웹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디자인에 그대로 넣으면 모니터에서는 괜찮아 보여도 인쇄에서 픽셀이 깨진다. (웹 이미지 확대해서 쓰면 바로 티 납니다.)
재단선·블리드 미반영은 구조적 사고다. 일반 인쇄물은 사방 3mm 블리드, 대형 출력물은 5~10mm까지 잡는다. 배경색이나 이미지가 페이지 끝까지 닿는 디자인에서 블리드를 잡지 않으면 재단 오차로 흰 줄이 생긴다. 인쇄 공정상 자연스러운 오차인데 결과물에서는 불량처럼 보인다.
CMYK 총량 250% 초과도 자주 발생한다. 각 채널 값을 합산했을 때 250%를 넘으면 잉크 과다로 떡지는 현상이 생긴다. 검정에 가까운 색을 만들려고 4도를 모두 진하게 잡으면 인쇄에서 잉크가 안 마르고 페이지끼리 들러붙는다. 아트지 기준 총량 300% 넘어가면 건조 시간이 급격히 늘어난다. 무광 코팅 들어가는 작업에서 뒷묻음 사고가 여기서 자주 터진다. (검정 진하게 만든다고 4도 다 올리면 뒷묻음 바로 납니다.)
디자인 단계 5가지 사양 — 왜 그렇게 잡아야 하는지
위 사고들을 막기 위해 디자인 단계에서 검수되는 사양이 5가지다. 단순 매뉴얼처럼 보이지만 각 항목마다 인쇄 공정의 물리적 이유가 있다.
해상도 300dpi가 표준인 이유는 인쇄 망점 때문이다. 오프셋 인쇄는 보통 150LPI 전후 망점을 사용한다. 이미지 해상도가 망점의 2배 이하로 내려가면 계단 현상이 그대로 보인다. 그래서 망점의 2배인 300dpi가 사실상 최소 기준으로 잡힌다.
PDF/X-1a 형식이 권장되는 이유도 단순하지 않다. PDF/X-1a는 투명도와 레이어를 저장 시점에 병합한다. 인쇄 RIP에서 투명도 해석 충돌이 나는 걸 미리 차단하는 구조다. 그림자 효과 많이 쓴 작업, 레이어 복잡한 작업에서 이 형식이 사고를 줄인다.
CMYK 모드 작업이 표준인 이유는 RGB → CMYK 변환에서 발생하는 색 손실 때문이다. 처음부터 CMYK 모드로 작업하면 변환 시점에 발생할 색 변화를 디자이너가 시안 단계에서 직접 보면서 잡을 수 있다.
블리드 3mm는 재단 오차 흡수용이고, 폰트 아웃라인 처리는 임베딩 누락 사고 방지용이다. 추가로 안전 영역(Safe Zone)도 짚어둔다. 재단선 안쪽 3~5mm가 안전 영역이고, 중요한 텍스트나 로고는 이 안쪽에 배치한다.
디자이너의 인쇄 공정 이해 — 실력보다 간극 이해
"디자이너 대부분이 인쇄 공정을 모른다"는 일반화는 정확하지 않다. 현장에서는 디자이너 실력보다 "모니터와 종이 차이"를 이해하느냐에서 사고가 갈린다. 시안만 보면 괜찮은데 인쇄 올라가면 무너지는 작업들이 있다. 감각보다 공정 이해 문제다.
원스톱과 분리 발주 — 진짜 차이는 다른 곳에 있다
디자인-인쇄 원스톱과 분리 발주의 차이를 검수 효율로만 보면 절반만 본 것이다. 분리 발주 자체보다 위험한 건 사양 전달이 구두로 끝나는 구조다. 원스톱은 수정 속도가 빠르고, 분리 발주는 기록이 남는 장점이 있다. 둘 다 검수 담당자가 비어 있으면 그대로 사고가 난다.
감리와 검수 단계
한국 인쇄 시장에서 통용되는 검수 절차는 단계별로 구분되어 있다. 시안 단계 검수에서 컬러 모드·해상도·폰트를 확인하고, 인쇄용 데이터 변환 단계에서 PDF/X-1a 저장과 블리드·안전 영역을 확인하고, CTP 출력 직전에 PDF 최종 검수가 들어가고, 시운전 단계에서 실제 인쇄 색상을 확인한다.
대량 인쇄나 인쇄소와의 첫 작업에서는 현장 감리를 권장한다. 인쇄기 색상을 직접 확인하고 담당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차후 디자인 검수 효율을 높인다. (색 민감한 작업은 현장 안 오시면 나중에 말 나옵니다.)
시안은 감성이지만, 데이터는 수치다. 디자인이 끝났다고 인쇄가 끝나는 건 아니다. 인쇄기는 숫자로 판단한다. CMYK·300dpi·3mm 블리드·폰트 임베딩·PDF/X-1a 다섯 가지는 디자인 단계에서 검수되어야 인쇄 단계에서 사고가 줄어드는 항목이다.
희명디자인은 1999년부터 디자인과 인쇄를 한 곳에서 운영해온 회사로, 시안 단계 검수부터 시운전 색검수까지 단계별 검수 절차를 발주처와 함께 진행한다. 디자인-인쇄 경계에서 무엇을 검수해야 할지 막히실 때 사양 단계부터 같이 짚어드린다. 이상 칼럼 글을 마친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
- 희명디자인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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